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

「뭐…… 생각해 봐. 불행한 신으로 사는 것보다 행복한 서커스 광대로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겠어?」 내가 약간 목소리를 높인다.

「불행하더라도 난 신이야. 신으로 살 수밖에 없어.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?」

「어떻게 해야 하냐고?」 내가 되묻는다.「신도 스스로 돕지 못하는 일을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돕겠어?」

아벨이 몸을 내민다. 「야콥, 인간들 없이는 내가 뭐겠어? 인간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냐.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을 때만 움직일 수 있어. 아무도 선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나는 힘을 쓸 수가 없다고. 그게 바로 내 문제야.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무기력증은 믿음을 잃어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어. 이해하겠어? 나의 탈진은 곧 세상의 탈진이고, 나의 의욕 상실은 곧 세상의 의욕 상실이야!」


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. 얼마 전 병원에 있을 때 봤던 그 옛날 영화가 방영 중이다. 이번에도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. 제임스 스튜어트가 절망한 가장 역이고, 천사가 자살 위기에서 그를 구하는 것까지는 기억나는데…… 빌어먹을, 이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?

「It’s a Wonderful Life.」 아벨이 말한다. 눈을 감고 있지만 깨어 있는 게 분명하다. 「독일어 제목은 <인생은 아름답지 않아?>였지. 1940년대 카프라의 전형적인 작품이야.」

「아벨! 이 모든 게 지금 나한테 얼마나 좌절감을 주는지 알기나 해? 내가 없으니까 아버지는 아직도 살아 계시고, 내 동생은 범죄의 <범> 자도 모른 채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도시 근교에 근사한 집까지 갖고 살고 있어. 다음엔 또 뭐가 나올까?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혹시 인류에게 전염병이나 전쟁이라도 일부 면제되는 거 아냐?」

「내 세계로 들어온 걸 환영해.」 아벨이 말한다.「이런 상황들을 보면서도 절대자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? 단 하나의 결혼 생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십 억 명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? 하물며 그 인간들이 맺는 수조, 수천 조의 관계를?」

「그렇다고 지구상의 수십 억 인구에게 내가 기여한 것이 제로라는 사실에 위로가 되지는 않아.」

아벨이 유감의 뜻으로 두 손을 든다.

「이제 서서히 끝낼 때가 되지 않았나?」 내가 아벨에게 말한다. 「그래, 모든 사람이 카프라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그 주인공처럼 될 수는 없지.」


「전적으로 감정에 의존해서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말입니까?」 내가 놀라 묻는다.

하인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. 「아니, 그럼 그것 말고 믿을 게 뭐가 있소? 감정만큼 구체적이고 생생한 건 없소. 그래서 사람들이 지식이 아닌 사랑과 행복, 우정 같은 걸 동경하는 것 아니겠소?」